지구견문록/'17 시베리아 횡단

[러시아/울란우데]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3

산적수염 2018. 6. 11. 01:05




기차 안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이렇다. 움직일 공간도 딱히 없을 뿐더러 사실 귀찮기도 하여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병실에 입실한 사진이 아니다.) 딱 봐도 여행자 같은 외국인이 두리번 대니 여기저기서 꽤나 시선이 느껴진다. 하바롭스크에서 울란우데까지는 대략 3일의 시간, 그 동안 기차에서 지내야한다. 꽤나 긴 시간이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군인이 우르르 몰려와 열차 한 칸을 가득 채웠다. 파란 옷의 두명이 같은 좌석을 쓰게 되었고 나머지 자리는 초록 옷의 군인으로 가득 찼다. 화장실 앞쪽에 콘센트가 있어 그 곳에서 배터리를 충전시켜 놨으나 몇시간 뒤 가보니 사라져 있었다. 여행 초반에 충전기가 사라져서 굉장히 멘탈이 깨져 버렸다. 배터리를 총 3개를 챙겼는데 2개만 남게 되었다. 번역기로 화장실 앞에 충전기와 배터리를 본적 없는지 주변 승객들에게 물었으나 다들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 때 심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건만 놓고 가면 이렇게 종종 사라지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무난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 옆 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러시아인 두 명이 갑자기 주먹다짐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싸움이 일어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두 사람다 거구의 몸으로 굉장한 위압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경찰이 들어와 조사 후 한 사람을 데리고 기차에서 내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두 사람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카드 게임 때문에 싸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말이라면 굉장히..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같은 칸의 군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파란 옷 두명은 장교, 부사관의 간부였고 나머지는 신병들이었다. (어쩐지 파란 옷은 머리가 길었다) 나는 러시아 말을 전혀 하지 못해 말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 모든 대화는 바디랭기지와 그림, 그리고 기차가 역에 정차해 잠시 데이터가 터지는 틈에 쓰는 번역기가 최선이었다. 복잡한 대화를 할 때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것은 꽤나 깊은 내용의 대화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장교는 28살로 10년째 복무 중이었고 부사관은 23살로 제이슨 스타뎀을 빼다 닮았다. 사병들은 모두 신병으로 교육을 마치고 다른 부대로 이동 중이라고 한다. 모병제인지 징병제인지 물어보니 죽을 상을 지으며 징병제라고 대답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특이한 점은 신병들임에도 핸드폰이 있었다. 카메라 부분에 보안스티커를 붙이면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남한은 복무기간이 약 2년정도 되고 북한은 10년이라고 설명해주니 표정이 정말 가관이였다. 


잠시 만났을 뿐인데 다들 정이 많아서 금새 친해져서 늦은 시간까지 잠도 안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아까 낮에 사라진 충전기에 대해 이야기 하니 한 병사(자칭 쿨가이로 불러달라던)가 자신의 충전기를 선물로 주겠다며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핸드폰 하나만 보며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정말 큰 은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장교가 뭘 가져오라고 지시하자 한 병사가 작은 박스를 두개를 들고 왔다. 작은 박스는 러시아의 전투식량으로, 한개를 뜯어 어떤 음식인지 어떻게 먹는지 친절히 알려주고 먹어보라고 줬다. 보답으로 내가 동남에서 샀던 홍차와 한국 동전을 선물로 줬는데 굉장히 좋아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차를 굉장히 좋아해서 이국적인 차를 선물로 주면 굉장히 기뻐했다.



내용물은 이렇게 되어 있고 고체연료에 불을 붙여 데워먹는 형식이다. 물에 타 먹는 주스, 크래커, 다진 닭고기 통조림, 초코바 등등인데 맛은 솔직히 우리나라의 신형 전투식량이 더 맛있다. 이렇게 받은 전투식량 한 박스는 먹기 아까워 한국에 가져가려는 마음 때문에 27일 가량의 손으로 들고다녔더니 정말 굉장한 짐이 되었다. 나중에는 먹을까 했으나 여태 들고 다닌 것이 아까워 한국까지 가져왔다. 이후 울란우데에 도착하기 전에 러시아 군인들은 모두 내리게 되어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 갈 길로 떠났다. 만약에 내가 동행이 있었다면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기차에 누웠던게 생각난다.


구형 한국 전투식량 < 러시아 전투식량 < 신형 한국 전투식량




드디어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가 광장 근처에 있어 광장으로 가니 역시나 얼음 조각상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역시나 이번 미끄럼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껏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울란우데는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로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동양계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음기 쫙 빼고 남자는 윤정수, 여자는 정주리씨를 닮았다. 러시아 하면 백인을 많이 떠올리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직접 와보니 동양계 사람도 굉장히 많다.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레닌의 머리. 광장 중앙에 머리 하나가 떡하니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다. 러시아 횡단 여행을 한다면 도시마다 이런 조각상이 굉장히 많아 찾는 재미가 있다.







광장은 그리 넓지 않았고 이런 형태로 되어 있었다. 얼음 조각상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겸한 디자인의 조각상이 많았다. 부랴트 공화국의 특색이 묻어있는 게르, 소, 낙타, 용과 같은 동양적인 디자인이 많아 굉장히 인상깊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근처 마트에 들려 음식을 사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데워 먹었다. 면이나 감자를 많이 먹다보니 쌀이 먹고 싶어서 볶음밥과 햄, 닭요리, 사이다를 구입했다. 볶음밥은 향신료 맛이 나서 별로였고 나머지는 맛있게 배를 채웠다. 8인실의 숙소에는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있었고 그 중 두명은 러시아인이었다. 한 명은 자신을 예카테린부르크 출신이며 국내 여행중이라고 소개했다. 겨울은 비수기라 그런지 숙소도 대부분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3~4천원 가량의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밝은 낮에 보는 레닌 머리 동상은 밤에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울란우데에서의 첫 방문지는 린포체 바그샤 사원으로 정해, 버스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타고 사원으로 향했다.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Datsan Rinpoche Bagsha, 린포체 바그샤 사원으로 러시아에서 손 꼽히는 큰 규모의 사원이라고 하지만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절이 훨씬 아름답고 규모가 크다. 울란우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고지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굉장히 좋으며 개인적으로 불교적인 음악과 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뭔가 마음에 힐링이 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침 도착했을 때 아침 불교 기도가 진행되고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양계 스님과 함께 백인 스님도 있었는데 처음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신기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안 사실인데 내부는 촬영 금지다. 그것도 모르고 당시에는 내부에서 당당하게 사진을 찍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러시아어를 몰라 촬영 금지인 줄도 몰랐다. 앵간하면 관광지에 가서 하면 안되는 규칙들을 굉장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민망시럽다.






사원의 뒤편에는 종이 있는데 쳐보니 굉장히 맑은 소리가 났다. 종 주변에는 스카프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장소가 있다. 스카프가 매달린 모습은 마치 토속신앙이나 무속신앙의 모습처럼 보였는데 우리나라의 등과 같은 의미인지 아니면 여러 문화가 섞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그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굉장히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음에도 자리에 서서 꽤나 오랫동안 풍경을 감상하다가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와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어느 상점 근처의 Shеnе Buuza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입구를 찾기 어려워 한참을 헤메다가 들어가 메뉴판을 받았는데 러시아어로만 써져있어 종업원과 한창 손짓발짓으로 음식에 대해 물고 답하며 메뉴를 선택했다. 이런 방식은 음식을 주문했지만 나오기 전 까지 어떤 음식인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다. 나온 음식은 소고기국, 고기 만두, 홍차였다. 보기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창 추위에 떨고 배고플 때여서 그런지 맛하나는 기깔났다. 한국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맛이다. 너무 맛있어서 만두를 한접시 추가로 시키고 국물 한방울까지 안남기고 싹 먹었다. 밥을 먹은 뒤 숙소 근처의 디저트 가게에서 케잌을 먹었는데 평범한 맛이었다.


밥을 먹다가 문득 들었 던 생각이 '러시아의 음식은 대부분 투박하다'였다. 어떤 의미냐면 우리나라는 여러 양념과 여러가지 재료의 색으로 화려한 음식이 많다.  하지만 러시아의 음식은 대부분 흰색이며 대부분 재료 그 자체의 맛이다. 으깬 감자라던지, 다진 고기라던지, 고깃국이라던지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 음식이 많다. 아마 추운 지방이기 때문에 그런 특징이 있는 듯 하다. 태국과 같은 나라는 굉장히 요란한 맛이나고 화려한 부분이 많은 걸 보면 기후에 따라 음식도 확실히 특징이 갈린다. 과거 학창시절 세계지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지만 직접 몸으로 겪어보니 새삼 신기하다.






이후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산책겸 구경을 했다. 러시아에는 굉장히 깔끔해 보이는 건물과 함께 언제 지었는지 모를 낡은 건물이 함께 있다. 나무로 된 건물은 대부분 비어있는 듯 했지만 드문드문 꽤나 자주 보인다. 나무로 만든 집은 내부가 굉장히 추울텐데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깔끔해 보이는 건물들과 분수가 있다. 찾아보니 Music Fountain 이라는데 주기적으로 연주회도 열리고 음악에 맞춰 분수가 나오는 곳인 것 같다. 한 겨울이라 사람은 없었지만 굉장히 깔끔한 곳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있어보여서 찍었다.


3일가량 기차에서 지내다 내렸을 땐 밖의 찬 공기를 마시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울란우데는 큰 도시는 아니며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랜시간을 기차에서 보내다가 잠시 머물러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행선지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만나는 동양적 문화는 상당히 새롭고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나는 울란우데에 머무는 당시 편한 잠자리와 따듯하고 동양적인 음식, 따듯한 물로 하는 샤워만으로도 더할나위 없이 충분했다. 후회가 전혀 없었다.


만약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을 계획을 짜고 있다면 기차에 너무 오래있지 말고 울란우데에 들려 힐링을 하고 가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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